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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든 빗썸 60조 원 오지급 사태는 언론에서 “직원 실수로 비트코인을 잘못 보냈다”는 정도로 다뤄졌지만, 투자자인 우리가 봐야 할 본질은 거래소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위험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자산을 맡기는 가상자산 거래소 시스템이 언제든 내 자산을 유령처럼 만들 수 있는 치명적 결함을 드러낸 사건이다.

    사건 요약: 60조 원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사건은 2월 6일(금) 저녁에 발생했다. 빗썸 이벤트 당첨자에게 원래는 2,000원~5만 원 수준의 원화 포인트를 지급하려 했지만 담당자가 지급 단위를 ‘원화’가 아니라 ‘비트코인(BTC)’으로 잘못 선택했다.

    그 결과 2,000원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비트코인 2,000개가 지급되는 방식의 오지급이 발생했고, 잘못 지급된 비트코인 총량은 약 62만 BTC로 추정된다. 금액으로는 최소 60조 원, 계산 방식에 따라 133조 원 수준까지 거론된다.

    사고 당시 빗썸이 회사 자산으로 보유한 비트코인은 약 175개 수준이었고, 고객 자산을 모두 합쳐도 약 4만 개 수준이었다는 설명이 나왔다. 즉 실제 보유량을 압도적으로 초과하는 수량이 시스템 명령 한 번으로 장부에 생성된 형태다.

     

    핵심 개념: 장부 거래(오프체인 거래)의 실체

    우리가 거래소 앱에서 비트코인을 사고팔 때, 모든 거래가 블록체인 위에서 실시간으로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처리 속도가 느리고 수수료가 높아 초당 수천 건의 거래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거래소는 내부 데이터베이스(장부)에서 잔고 숫자만 바꾸는 오프체인 거래를 사용한다. 사용자가 거래소에 코인을 입금하면 거래소는 코인을 내부 지갑에 모아 보관하고, 사용자 계정 화면에는 잔고 숫자만 표시된다.

    이 구조의 장점은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점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은 관리자 권한 또는 시스템 오류로 장부의 숫자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실체 없이 장부에만 존재하는 코인을 흔히 ‘페이퍼 비트코인’이라고 부른다.

    이번 빗썸 사태는 존재하지 않는 62만 개 규모의 비트코인이 장부상으로 생성되어 지급된 형태라는 점에서, 장부 거래 구조의 위험성을 노출했다.

    왜 가격이 빗썸에서만 폭락했나

    오지급을 받은 일부 사용자가 즉시 시장가 매도를 눌렀고, 장부상으로는 정상 잔고처럼 보이기 때문에 매도가 체결될 수 있었다. 그 결과 빗썸 내부 호가창에 매도 물량이 쏟아지며 급락이 발생했다.

    사건 당시 빗썸 내 비트코인 가격이 약 9,800만 원대에서 8,110만 원 수준까지 1~2분 사이 급락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글로벌 거래소 가격은 상대적으로 정상 흐름을 보였는데, 이는 빗썸 내부 거래가 빗썸 안에서만 가격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원래 거래소 간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차익거래가 작동해 가격이 평준화되지만, 사고 대응 과정에서 출금이 제한되면 외부로 이동해 차익거래를 실행하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 빗썸 내부 가격만 비정상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

    구조적 공포: “조작이 가능해지는 메커니즘”

    중요한 점은 누군가 실제로 조작했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조작이 가능해질 수 있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장부에 임의로 잔고를 늘릴 수 있다면, 시장가 매도를 통해 가격을 급락시키고 공포 매도를 유발하는 방식의 시세 교란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다.

    또한 선물 시장에서 하락에 베팅(숏)을 하거나, 다른 계정으로 저가 매수를 준비해 둔다면, 장부 조작과 시세 급변을 결합해 부당 이익을 얻는 시나리오도 상정할 수 있다. 이는 장부 기반 중앙화 시스템이 외부 감시와 통제가 약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 리스크다.

    월가가 한국 거래소를 불안해하는 이유

    전통 금융권에서는 거래(매매)와 보관(수탁)을 분리하는 구조를 선호한다. 예를 들어 미국 주식 시장에서는 증권사가 거래를 중개하더라도 실제 자산의 보관은 예탁결제기관 등 별도 안전장치가 담당한다.

    반면 한국의 많은 가상자산 거래소는 고객 자산 보관, 장부 관리, 거래 실행, 상장 결정 등 권한이 한 곳에 집중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는 ‘견제와 균형’이 약해질 수 있고, 시스템 오류나 내부 통제 실패가 발생할 때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앞으로 시장은 어떻게 될까: 3가지 시나리오

    시나리오 A는 규제 강화와 시장 재편이다. 금융당국이 내부 통제 의무를 강화하고, 보안·감사·준비금/부채 증명 등 컴플라이언스 비용이 늘어나면서 중소형 거래소가 도태되거나 M&A로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

    시나리오 B는 단기 신뢰 하락과 장기적 정화다. 거래소 신뢰가 흔들리면 국내에서 자금 이탈이 발생할 수 있고, 단기적으로는 김치 프리미엄이 축소되거나 역프리미엄이 나타날 수 있다. 대신 제도 정비가 가속되며 장기적으로는 시장 신뢰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시나리오 C는 시스템적 전염이다. 회수 불능분 확대, 연쇄 청산, 집단 소송과 같은 후폭풍이 커지면 거래소 재무 건전성 악화와 뱅크런 우려가 커질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온체인 결제 강제 등 시장 구조를 급격히 흔드는 조치가 논의될 수 있다.

    투자자가 지금 당장 기억해야 할 핵심

    이번 사건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중앙화된 장부 구조가 가진 본질적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거래소 화면의 잔고 숫자는 장부 기반이며, 내부 통제 실패가 발생하면 ‘유령 자산’이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투자자 관점에서는 거래소 리스크를 상수로 두고 대응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보관과 거래의 분리, 실시간 준비금 및 부채 증명, 사고 발생 시 강력한 배상 책임 등 제도 강화가 불가피해질 가능성이 크다.

    규제는 불편함이 아니라 내 자산을 지키기 위한 안전벨트가 생기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